사계 중, 봄
w. 밀빵
때는 오전과 오후의 경계선 사이, 카페 포아로가 가장 한가할 시간.
텅텅 빈 좌석들 사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고등학생이라기에는 제법 성숙해보였고, 아마 대학생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즈사의 기억으로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 다방에 드나드는 젊은 여자 손님들 중에는 어떤 알바생의 팬이 많다. 그래서 아즈사는 처음 그 여자를 보았을 때 자신의 동료를 노리고 방문한게 아닐까하는 다소 편견 어린 추측을 했으나 여자는 카페에 앉아있는 내내 딱히 아무로에게 말을 걸지도 그를 집요하게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무심한 얼굴로 커피를 홀짝이며 사색을 즐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에게는 보면 볼수록 묘하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아즈사가 그 정체를 내심 궁금해 하며 흘낏흘낏 쳐다보던 그때, 종소리가 울리고 손님 한명이 들어섰다. 몇 년째 포와로를 꾸준히 찾고 있는 노부인으로 아즈사와 아무로와도 안면이 꽤나 있는 사이다. 외투를 벗은 노부인이 살가운 태도로 말을 붙여오는 것에 즐거이 대꾸하는 동안 아즈사는 금방 의문의 손님에 대한 궁금증을 까맣게 잊었다.
“아즈사는 어제 휴일이었지?”
“네에, 쉬는 김에 전부터 가고 싶었던 식당에 다녀왔어요. 카레를 잔뜩 먹었죠!”
“상점가에 새로 생긴 그곳?”
아즈사가 커피를 내리고 몽블랑을 꺼내며 수다를 떠는 동안 아무로는 점심 장사를 대비해 각종 재료를 손질하고 원두를 꺼내놓고 있었다. 손질을 마친 아무로가 막 빵부스러기 떨어진 테이블을 닦으려는데 때마침 그에게도 대화의 물꼬가 날아들었다.
“아무로 씨는요? 아무로 씨도 쉬는 날이었잖아요. 뭐했어요?”
아무로는 평이한 어조로 대꾸했다.
“장을 좀 보고 청소를 했네요.”
그러자 노부인이 화들짝 놀라는 척을 하며 말했다.
“어머, 시시해라. 뭐 재미있는건 안했어요? 아무로 씨라면 데이트 하겠다는 아가씨들이 줄을 설 텐데.”
다소 짓궂은 물음이었지만 아무로는 빙긋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그 이야기는 끝나는 듯 했지만 잠시 뒤 그는 입을 열어 이렇게 덧붙였다.
“상점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걸 봤어요. 재미있는 일이라면, 그 정도일까요?”
그리고 몇 시간 뒤, 가장 바쁜 점심시간도 지나 다시금 한가해진 가게 안.
한동안 가게가 한산하리라는 확신이 들자 아즈사는 잠깐 쉬다오겠다며 휴게실 안쪽으로 사라졌다. 휴게실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안쪽의 인기척이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 나서야 아무로는 앞치마 자락에 손의 물기를 닦으며 주방 바깥으로 나왔다.
망설임 없는 발걸음이 닿은 곳은 예의 여자가 앉은 자리 앞이었다. 아무로의 그림자가 테이블 위로 드리우자 여자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잠시 동안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무로였다.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얼굴 보려고요.”
후루야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가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에도 충분히 봤을 텐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다소 부적절하게 들리는 문장이다.
여기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삽시간에 온 거리로 소문이 퍼져나갔을만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 카페 포와로에는 두 사람 뿐이었고 여자는 그 말을 불쾌하게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아무로의 얼굴에 희미한 피로감과 불신이 스쳐지나간 것과 달리 쿠온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곧 나직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채웠다.
“곧 점심시간이고, 여기 햄 샌드위치는 맛있다고 들었거든요.”
“누가 그런걸 가르쳐줬지?”
“글쎄요.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이 있으니까요.”
“소문을 듣고 다닐 만큼 이 거리에 자주 왔던가?”
“그냥 부하의 사적인 영역에 관심이 있지는 않을 텐데요.”
“…사적인 영역?”
“네, 사생활.”
아무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이렇게 나오면 부정을 해도 긍정을 해도 어느 쪽이든 제 입장이 이상해진다. 상대방의 질문을 교묘하게 따돌리는 것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도 전부 자신의 장기일 텐데 가끔 이렇게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상대가 있었다. 최근에는 단연코 이 여자가 제일이었다.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조직뿐일 때는 상대의 눈치를 봐야하니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는데 후루야 레이의 얼굴을 들킨 후로도 변함이 없으니 이제는 분하기까지 할 지경이다.
“사실은 일 때문입니다. 어제의 일, 추가정보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로의 못마땅해 하는 기색을 눈치 챘는지 쿠온은 장난 같은 대화를 그만두는가 싶더니 두루뭉술하게 말하며 작은 칩 하나를 건넸다. 아무로는 그것을 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넣으며 경고하듯 목소리를 낮게 내리 깔았다.
“꽤나 자주 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는데 말이야, 사적인 일이라면 관심을 갖지는 않겠지만 이 거리는 눈치 빠른 사람들이 많으니까 주의하도록 해.”
이 거리에는 주의해야 할 인물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약점을 잡으려다가 되려 약점을 잡히기 십상인 위험천만한 거리 아닌가. 당장 이 가게만 해도 그랬다. 아무로가 표면적으로 조직에 무어라 보고하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이 위층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아직 잠자는 코고로의 정체를 눈치 채지는 못했을 테지만 이 경우에는 눈치 채지 못해서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할게요.”
하지만 쿠온은 그런 대답만을 했을 뿐 일이 끝났는데도 도통 돌아가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리필한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뿐이다. 그 태연자약한 행동에 후루야는 기가 막혔다. 이번에는 순전히 상사로써였다.
“…한가한가?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묻자 쿠온은 빤히 아무로를 응시했다. 뭐냐고 눈짓으로 묻자 도리어 자신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답한다.
“햄 샌드위치, 안 만들어 줄 거예요?”
“하…?”
*
어두운 폐공장에 급박한 발소리가 울렸다.
인기척 없는 버려진 건물 안,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 하나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중인 듯 허둥지둥 달아나고 있었다. 가쁘게 헉헉대는 숨소리조차 타인에게 닿을까 저어되는 듯 숨까지 억눌러가며 한참을 내달린 끝에, 겨우 추격자를 따돌렸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던 남자가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였다.
“큭?!”
등을 걷어차는 강한 충격에 남자는 앞으로 밀려 넘어졌다. 그것에 미처 반항할 틈도 없이 철컥 하는 살기등등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총구가 뒤통수에 닿는다.
“유통책은 어디에 있지?”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쿠온은 마찬가지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총구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대답해.”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몇 시간만 버티면 우리 승리야. 그걸 내가 말할 것 같아?!”
남자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 쿠온에게까지 느껴져왔다. 그렇지만 억지로 꾹 다문 입은 열릴 기미가 없어보였다. 남자는 경찰청의 데이터 서버에 침입했던 범죄 조직의 해커였다. 시간 안에 이 남자에게서 정보를 캐내지 못하면 기밀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의 수사가 물거품이 된다. 당장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할까?
쿠온은 어릴 적부터 조직에서 길러졌고 그 나이대의 평범한 여자아이가 겪을 일 없을만한 상황도 충분히 겪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직에서의 경험이었고 직접 임무의 최전선에 투입된 적도 없었다. 그 탓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종종 망설이게 됐다. 경찰로서는, 그것도 공안으로서는 아직 풋내기이니 쿠온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순간 망설이던 쿠온의 몸을 누군가 끌어당겼다.
“물러서 있어.”
쿠온은 그 힘에 이끌려 몇 걸음 뒷걸음질 쳤다. 쿠온을 뒤로 밀어낸 것은 다름 아닌 뒤따라온 후루야였다.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진 밤, 정장을 차려입은 후루야는 안 그래도 냉랭한 낯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그 표정에 떠올라 있는 것은 분노라기보다는 섬뜩하리만치 사무적인 얼굴이었는데, 오히려 그 태연함이 더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표정 없는 얼굴 그대로, 후루야는 망설임 없이 P7M8의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악!!”
한발의 총성이 밤하늘을 울리고 쓰러진 남자는 구멍이 뚫린 팔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팔꿈치 위쪽의 출혈에서부터 붉은 피가 흘러 바닥을 적신다.
남자를 향해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한 후루야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자신은 관계없다는 듯 일견 오연해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상황과 꼭 한 몸인 양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대답했으면 좋았을 텐데.”
남자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너…!”
“그 몇 시간 동안 네 입을 열지 못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쪽을 너무 얕봤군.”
“경찰이라는 새끼가, 윽…! 사람을…!”
“하, 내가 경찰로서 여기에 있는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걸. 다시 한 번 묻겠다. 어디로 빼돌렸지?”
후루야의 구두가 남자의 팔을 짓밟았다. 총상을 입은 팔위를 무게 실린 발이 짓누르자 남자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힘껏 몸부림쳤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후루야는 발을 치우지 않았다.
이를 악문 남자가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뜬다. 그 얼굴에 서린 원한이 선명했지만 후루야는 그 시선에마저 지독히 평이한 목소리로 혀를 찼다.
“번거롭게 하는군.”
후루야는 소매를 걷으며 쿠온에게 자신의 재킷을 벗어던지듯 건넸다. 그러자 하얀 셔츠 위로 새빨간 핏자국이 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선명한 적색이 유독 눈에 박혀 크게 다르지 않은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조직에서 보아왔던 것과, 그곳에서 보았던 버본의 모습과도.
쿠온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후루야 경부.”
“뭐지?”
지극히 사무적인, 무감한 잿빛 눈동자였다. 이렇다 할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목소리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쿠온은 그저 가만 후루야의 재킷을 받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밤바람에 식었는지 마땅히 옮겨와야 했을 체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후루야는 잠깐 동안 그런 쿠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길지 않았고, 그는 곧 다시 몸을 돌려버렸다.
귓가를 때리는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심장을 찌르고 눈꺼풀을 감으면 피륙으로 짜인 어둠이 스친다. 그러나 쿠온은 눈을 감지 않았고 그 밤 내내 후루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사무치도록 요란한 밤이 조용한 아침을 맞을 때까지, 변함없이 그저 그렇게.
조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후루야는 미지근한 물로 손을 씻었다.
어젯밤 손을 흠뻑 적셨던 피는 이미 씻겨 나간지 오래지만 아무로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손에 붉은 자국이 남아있지 않은지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몇 번인가 반복해서 씻은 손은 평소보다 거칠어진 듯 했다. 손가락 끝에 거스러미가 올라와 있었다.
물론 손에 피 좀 묻혔다고 징징댈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이 모든 일들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일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마지막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그가 버본으로서의 잠입을 끝내더라도.
하지만 그도 사람이기에 생각하는 바는 있다.
처음 조직 내에서 마데이라와 그런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던 것은 다분히 계산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데이라라는 조직원에게 혐오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 그건 마데이라가 이름을 받은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직접적으로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젯밤에도 굳이 험한 일을 떠맡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게 그 여자가 여태껏 해온 일과 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일이라거나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래도.
후루야 레이는 쿠온 시즈쿠에게 그런 책임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순간 그를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마 단순한 책임감과는 좀 다를 거라고 후루야 레이는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후루야의 손은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촉촉한 식빵 위로 양상추를 뜯고 햄을 올린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움직이는 후루야의 모습을 바 자리로 옮겨온 쿠온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투명한 눈동자가 후루야의 움직임을 이리저리 따라붙었다.
“……너무 쳐다보는 것 아닌가?”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아요. 게다가 이곳에서 아무로 토오루에게 관심을 갖는 건 평범한 행동이라고 들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쿠온의 얼굴에 솔직하게 재미있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평범을 가장하고 있으니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잘도 말하는군.”
쿠온은 가늘게 미소 지었고 후루야는 투덜거렸다.
“평범을 가장하다니, 그냥 평범하게 카페에 오는 법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가장까지 할게 있어?”
그런 투덜거림 한편으로 후루야는 묻고 싶었다. 그러는 너는 여기에 서있는 내게 혐오감이나 거부감은 없느냐고.
그 생각을 읽은 듯 쿠온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피부 위로 오후의 햇살이 가늘게 쪼개졌다.
“그러네요. 여기서는 평범한 카페 점원이죠. 저도 그냥 평범한 손님이고요.”
평범한 카페 점원이라. 어젯밤의 자신을 보았으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후루야는 속으로 헛웃음 쳤다. 어젯밤 있었던 일은 절대로 세계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겠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관측자로서 쿠온 시즈쿠는 자신을 단죄할 자격은 없을 지언즉 판단할 자격은 있는 셈이다.
버본으로서 조직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후루야는 악당에게 어울리는 몇 가지 평판을 얻을 수 있었고 그 평판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손에 피를 묻힌 적도 많았다. 그리고 마데이라는 몇 년 동안 그 모든 일들을 전부 곁에서 지켜봐 왔다.
그러니 어제와 같은 일들은, 따지고 들자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으나…
‘이제는 변명할 수 없어졌지.’
자신에게는 진짜 모습이 있다는 자기위로도 무색해져버린 셈이다. 그들이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 양 마주쳐버렸으니까.
물론 후루야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고 그것에 이렇다 할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정당화 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이 무의미한 악행을 저질렀다고도, 자신의 행동이 불필요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 조직에 몸담고 있더라도 후루야는 어디까지나 세계의 뒤편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공안의 방식이었고 매사에 떳떳하지는 못할지언정 정의와 악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제대로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선택에 그를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지점은 어디 있는 걸까?
후루야는 이럴 때마다 그것이 궁금했다. 처음 마데이라와 만났던 순간의 자신이 미숙했다는건 알고 있지만 그 뒤로 버본에게 조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린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작 길을 알려주려고 했을 뿐인 별것도 아닌 행위 따위, 그 뒤의 행적들에 묻혀 잊어버리기 십상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데이라는 끝까지 그를 조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공안 내에서도 살인자라는 평가를 받던 후루야를 조직의 간부가 반대로 정의내린 것이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었지만 내심 기껍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마데이라를 지켜보면서 그 기꺼운 마음은 점점 커졌다. 정작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본인일 텐데 자신더러 어울리지 않는 인간 운운하는 꼴이란.
이 마음이 족쇄가 되지는 않지만 아무렇게나 놔두고 갈 수도 없으니 문제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흘러드는 상념까지 막을 수는 없다.
차라리 직접적인 방해가 된다면 매정하게 끊어 내치기라도 할 텐데.
선을 넘지 못하는 연정이, 그러나 무심히 지나쳐버릴 수도 없게끔 가슴 한구석에 박혀 때때로 그를 돌아보게 한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처럼.
그런 생각에 빠진 것도 아주 잠시였고 이제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을 지경인 특제 샌드위치는 금방 완성되었다. 접시에 얹은 샌드위치를 앞에 내려놓자 쿠온은 조금 웃었다.
“먹어보고 싶었어요, 이거.”
“…말하면, 만들어줬을텐데.”
“그래요?”
쿠온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후루야는 그 의아해하는 얼굴에 대고 저도 모르게 힘주어 말했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정말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이 사랑을 위해 인생을 걸고 뛰어들만한 열렬함은 없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그랬다. 잠입한 조직의 간부에게 품은 연심을 인정하면서도 끝끝내 그 감정이 경계심을 뛰어넘는 일이 없었고 어릴 적 품은 첫사랑의 감정이 제 안에서 사라지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안 그렇게 생겨서 건방진 배려를 하는 밉살스런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먼저 멋대로 마음에 안 드는 배려를 하려 들었으니.’
그러니까 이 여자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고.
내 사랑도, 너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일이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너를 더…
“하지만 괜찮아요. 여기 오면 먹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쿠온은 후루야가 만든 것을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후루야는 그 작은 입 사이로 송곳니가 날카롭게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하얀 이가 빵을 짓누르고 아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채소가 부서진다. 후루야의 손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타인의 피와 살이 된다. 그렇게 오늘도 후루야는 타인을 훼손한 만큼 타인을 채우고 있었다.
그게 변명이 되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인 위안은 되었다. 후루야는 아까의 쿠온이 그러했듯 그 평화로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입가를, 사라지는 샌드위치의 모양을. 후루야는 그것이 제법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문득 의문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쿠온은 제 어느 부분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샌드위치를 만드는 동안 쿠온이 자신의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그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매번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폭력과 무관한 삶을 살지도,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고 살았을 여자였다. 그 잔인함을 낯설어하지도,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살아온 이 여자는 어젯밤 등 뒤에서 어떤 눈을 하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하지만 후루야는 그 의문을 굳이 수면 위로 끄집어내지 않기로 했다. 매번 그런 것을 궁금해 했다가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테니까. 후루야는 대부분의 경우에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합리적이군.”
“그렇죠.”
그 대신 후루야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만들어달라고 해. 여기가 아니라 어디서든.”
쿠온의 새파란 눈이 순간 부드러워졌다. 이전에는 없었던 변화다. 항상 태연한 얼굴을 하고 무심하게 굴던 여자였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안 어울리게 솔직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만큼 자신의 감정을 몸 바깥으로 기꺼이 꺼내놓기 시작해서 후루야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게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간질거림을 느낄 때마다 후루야는 좀처럼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비합리적인데요.”
그 달갑지 않은 감각을 잠재우려고 노력하는데 쿠온이 툭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까요.”
그 얼굴에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어렴풋한 미소가 걸린다. 후루야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곧 퇴근시간이야.”
그 앞뒤 모두 잘라 먹은 권유를 쿠온은 용케 알아들은 모양이다. 쿠온이 대답했다. 별것도 아니라는 듯, 여느 연인 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듯이 몹시도 평범한 투로.
“상점가 앞에서 기다릴게요.”
그 대답에 묵묵히 몸을 돌리며 후루야는 어울리지 않는 낯부끄러움을, 그리고 그 낯부끄러움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어떤 울렁임을 느껴야만 했다. 때마침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아즈사가 고개를 갸웃댔다.
“아무로 씨, 이제 교대할까요? …응? 표정이 왜 그래요?”
“…아뇨, 아무것도.”
후루야는 결국 들키지 않게 뺨 안쪽의 살을 지그시 깨물고 말았다. 텅 빈 접시 위에 흩어진 빵부스러기마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 했다. 싱크대의 수도꼭지에서 채 빠져나가지 못한 물방울이 뒤늦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잠시 뒤, 포와로 바깥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함께 있는 모습을 주위에 보여서 좋을게 없었고 이 거리에서 아무로가 유명인인 것도 있어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길만 골라 걸었다. 덕분에 거리는 무척이나 조용했고 귀갓길을 함께하기를 택한 것이 무색하게 후루야도 쿠온도 별말이 없었다. 본래 서로 쓸데없이 떠드는 성격이 아닌데다가 공안 경찰로서 마주친 후로는 내내 묘한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이었다. 그건 후루야가 쿠온의 속내와 상부와의 거래를 알게 된 후로도 큰 변함이 없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불편하지도, 그렇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침묵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묵묵히, 그러나 빠르지는 않은 걸음으로 보조를 맞춰 걷던 후루야는 쿠온의 옷차림을 곁눈질 하고 자신이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내밀었다. 이제 봄이라고 불릴만한 계절이라지만 쿠온의 옷은 좀 얇아보였다.
뻗어 나온 쿠온의 손끝이 익숙하게 카디건을 받아든다. 그 모습에서 문득 또다시 어젯밤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자신의 재킷을 받아들던, 미묘하게 굳어있던 그 손끝. 확실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던.
“이제 봄이라고 생각해서 좀 방심했네요.”
그러나 어젯밤과 달리 쿠온은 그 카디건을 아무렇지 않게도 받아 자신의 옷 위로 걸쳤다. 두 사람은 약간의 체격차가 있어서 후루야의 카디건은 쿠온에게 품이 제법 넉넉하게 남아돌았다. 소매가 길게 팔랑거렸다.
“곧 벚꽃도 피겠지. 하지만 일교차에는 주의하도록 해.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하니.”
“알아요.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면 안 되겠죠.”
쿠온이 카디건의 소매를 접어 올리느라 고개를 숙이던 그 순간 아래로 늘어진 나뭇가지 하나가 쿠온의 어깨를 가볍게 스쳤다. 그 나뭇가지에 아직 채 피지 못한 꽃망울이 매달려있었다.
쿠온은 그 꽃망울을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가 예고도 없이 태도를 바꿔 물었다.
“저기, 너는 왜 경찰이 됐어?”
한동안은 조직의 일로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후루야는 오랜만에 듣는 말투라고 생각하며 자신도 버본으로서 답할까 했으나 그것이 후루야 레이를 향한 질문이었기에 관두었다.
“그건 어떤 입장에서 묻는 거지?”
“그냥, 참고가 될까 해서.”
“경찰 연기를 하는 일에 말인가? 내가 그걸 대답해줄거라고 생각해?”
후루야는 여자가 그 말을 정정해주기를 바랐으나 기대하지는 않았고 역시 여자는 딱히 그 말에 반박하는 기색이 없었다. 후루야가 직접 따져묻지 않는 이상 끝까지 사실을 숨기려는 모양이다. 그게 오래 갈 리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저러나 몰랐다.
이럴 때마다 후루야는 그 뺨을 틀어쥐고 감히 네가 저를 건방지게 걱정하려 드느냐 쏘아붙이고 싶어지고는 했다. 못 나올 곳에 가둬놓고 제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해버리고픈 충동도 있다. 내가 너의 기만을 정말로 모를 줄 알았느냐고, 이제 와서 내게 너 하나가 추가된다고 버티지 못할 것 같았느냐고 따지고 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자신에게 손 내밀어주던 친구들이 전부 떠나버렸기 때문일까 첫사랑과의 추억이 완전히 일방적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일까. 후루야는 언젠가부터 이런 일에 있어 제가 받는 것보다 베푸는게 훨씬 편하고 익숙했다. 그런데 이런 폭력적인 호의라니.
그 짜증을 담아 후루야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여자를 좋아해서.”
쿠온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후루야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그것이 대단히 안 어울리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투가 이상할 뿐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애인… 비슷한 관계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여자라니, 미인이었어?”
“엄청난 미인이었지.”
“그래.”
하지만 성격 나쁘게도 쿠온의 그 표정을 보니 후루야는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서로에게 솔직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서로서로 가면을 쓴 채로 역할극을 즐기며 그 시간을 유예하는 한편의 긴 연극.
그들의 관계는 흐지부지되어 이름을 좀처럼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후루야는 아직 이별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만일 이것도 그의 실수로 시작된 연애의 연장선이라면 있는 힘껏 책무를 다하리라.
‘선택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지.’
그 선택을 방해하거나 조롱할 기회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지만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들은 지금 수많은 선택지들 가운데서 아슬아슬한 자존심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첨예하게 오가는 선택들의 끝에서 과연 원하는 바를 이루는건 누구일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후루야는 이 눈치싸움에서 얌전히 패배해 줄 생각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패배는 그의 성미와 맞지 않고 근성으로 밀릴 생각도 없다. 계속 휘둘리는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해서 그 위치에 안주할 리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뭐, 몰라도 상관없지만.
어둑해진 길거리에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고 쿠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직 저녁은 쌀쌀해.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그래.”
그러나 쿠온은 그가 내민 손을 잡지 않고 빤히 바라보았다. 거절도 승낙도 아닌 애매한 반응과 함께 침묵이 길어지자 설마 쿠온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는지 후루야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야, 거절인가? 그럼 그렇다고…”
“아니.”
쿠온은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깜빡였다. 푸른 눈동자가 느릿하게 점멸했다. 쿠온의 눈동자에 후루야의 어리둥절한 얼굴이 비친다. 표정 탓에 한층 어려보이는 얼굴이다.
“역시 변한게 없구나 싶어서.”
영문 모를 소리를 듣는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후루야는 더욱 더 미간을 좁혔고 그 모습은 쿠온으로 하여금 5년 전의 언젠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으슥한 골목 안, 처음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던 어느 날의 데자뷰.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숙했던 시절의 잔해.
하지만 그 흔들림이 있었기에 쿠온 시즈쿠는 이곳에 있었다.
‘……길을 잃었다면 나가는 길을 알려줄게.’
“…무슨 말이야?”
쿠온은 오래된 동화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난 어디로 가야하지? 소녀가 묻고, 고양이가 답한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길이 있으면 걸을 수 있어.’
그리고 그 길의 존재를 알려준 것은 눈앞의 이 남자였다. 그에게는 그 자각이 없을 테지만 쿠온에게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사실이다.
쿠온은 내밀어진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딱딱한 손가락이 감긴다. 바람이 불어 고동색 머리칼이 흐트러진다. 후루야는 저도 모르게 그리로 손을 뻗어 눈가를 덮은 머리카락을 치워주었다.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떨어져 나간 순간 그 사이로 또렷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헛숨을 들이킨 그 순간 여자는 두 눈을 또렷하게 뜬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후루야 경부.”
곧 이 거리에는 벚꽃이 가득 피어 꽃잎이 바닥을 물들일 테고 내일은 내일의 망설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봄이었다. 사계는 순환하기 마련이니 이 계절을 맞아 새롭게 태어나는 춘풍에 막연한 기대를 품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게 또 다른 욕망과 충돌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머물렀다 사라지는 현재만큼은.
‘함께 있고 싶어.’
설령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소원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잡은 손목 밑에서 쿵쿵, 하고 시끄러운 맥박이 울리고 있었다. 소리는 점차 거세져 이윽고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주인을 모르는 그 규칙적인 고동은 누군가에게 있어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주었고, 소녀는 기꺼이 그 이정표를 주워 길 위에 박음질했다.